가도가도 유럽 여행은 늘 로망이지만,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도시에서는 자칫 여행의 여유와 감동이 반감되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일상처럼 느껴지는 공간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소도시 위주의 조용한 유럽 여행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상대적으로 한국인 방문이 적고, 유럽의 전통과 일상이 그대로 살아 있는 세 곳의 유럽 소도시를 소개합니다. 현지인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진짜 유럽 여행, 지금부터 함께 떠나보세요.
슬로베니아 피란, 바다와 중세가 만나는 항구 마을
슬로베니아는 유럽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중 하나이며, 한국인 여행자에게도 아직 낯선 국가입니다. 그중에서도 피란(Piran)은 슬로베니아의 아드리아해 연안에 자리 잡은 작은 항구 도시로, 한적하고 고즈넉한 매력을 지닌 여행지입니다. 이 도시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시가지와 붉은 지붕의 건물들, 바다를 따라 이어진 산책길이 어우러지며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냅니다. 피란은 자동차 진입이 제한된 마을이기 때문에 걸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돌로 포장된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탁 트인 바다가 시야를 가득 채우며, 낡은 석조 건물과 고풍스러운 교회, 광장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타르티니 광장은 마을의 중심으로, 작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음악가 주세페 타르티니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언덕 위의 성벽으로 올라가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이곳은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포인트이자, 해 질 녘 붉은 노을과 붉은 지붕이 어우러진 장관은 피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한국인 관광객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 유럽 현지 여행객이나 크로아티아·이탈리아 인근 국가에서 오는 사람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워 피자와 파스타 등 음식도 훌륭하며, 가격도 타 유럽 관광지 대비 저렴한 편입니다. 대형 호텔 대신 현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아파트형 숙소에서 머물 수 있어 보다 친근하고 실용적인 체류가 가능합니다. 북적이지 않은 해변 도시에서 진짜 유럽의 여유를 느껴보고 싶다면 피란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독일 밤베르크, 고요한 운하 도시의 여유로움
밤베르크(Bamberg)는 독일 바이에른 주에 위치한 중세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 전체가 박물관처럼 아름답게 보존된 곳입니다. 베를린, 뮌헨 같은 대도시와 달리 한국인 관광객의 비율이 매우 낮아 조용하고 진정성 있는 여행을 즐기기에 적합합니다. 밤베르크의 가장 큰 매력은 ‘운하 위의 마을’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과 강변을 따라 들어선 목조 주택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경입니다. 구시가지의 알트슈타트는 한눈에 봐도 고풍스럽고 정교한 건물들이 가득하며, ‘작은 베네치아(Little Venice)’ 구역은 낮에는 유유히 흐르는 보트와 함께, 밤에는 노란 조명이 비추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도시의 또 다른 명물은 ‘훈제 맥주(Rauchbier)’입니다. 맥주 애호가라면 꼭 방문해야 할 양조장이 몇 곳 있으며,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짙은 스모키 향의 전통 맥주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도시는 매우 컴팩트하게 구성되어 있어 도보로 주요 명소를 하루 만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 밤베르크 대성당, 구 시청사, 장미 정원은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거리 곳곳에는 관광객보다 더 많은 현지인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대형 체인점이 아닌 가족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정통 독일식 레스토랑 등도 많아 독일의 일상적인 미식 체험이 가능합니다. 조용히, 깊이 있게 독일을 경험하고 싶다면 밤베르크는 반드시 일정에 포함해야 할 보석 같은 도시입니다.
포르투갈 오비두스, 성벽 안에 숨겨진 문화 마을
오비두스(Óbidos)는 리스본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중세 마을로,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마을은 포르투갈에서도 조용하고 낭만적인 여행지로 꼽히며, 특히 한국인 방문객은 거의 없어 현지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마을 입구를 지나면 성문과 함께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등장하고, 좁은 돌길을 따라 산책을 시작하게 됩니다. 골목마다 붉은 기와지붕과 흰색 벽, 푸른 타일로 꾸며진 전통 포르투갈 가옥이 펼쳐지며, 꽃으로 장식된 창문과 세월의 흔적이 묻은 벽면이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오비두스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문학의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을에는 책을 파는 서점이 곳곳에 있고, 와인샵이나 카페와 결합된 독립 서점도 있습니다. 매년 열리는 국제 문학 축제나 중세 페스티벌도 이 마을의 문화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이외에도 성벽 위를 따라 한 바퀴 도는 트레킹은 여행자에게 가장 인상 깊은 코스 중 하나입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마을 전경과 멀리 펼쳐진 포도밭 풍경은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농촌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작은 카페에서는 포르투갈의 체리 리큐어인 ‘진징하(Ginja)’를 초콜릿 잔에 담아 제공하는 독특한 음료를 맛볼 수 있으며, 이 또한 오비두스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경험입니다. 조용히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싶거나,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면 이곳은 최고의 힐링 여행지가 될 것입니다.
유럽 여행은 꼭 유명 도시만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인 관광객이 적은 유럽의 소도시는 보다 조용하고, 더 깊은 감동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슬로베니아의 피란, 독일의 밤베르크, 포르투갈의 오비두스는 그런 점에서 진짜 유럽을 만나기에 최적의 장소들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평소 가보지 않았던 이 작은 도시들을 방문해보세요. 당신의 유럽 여행이 훨씬 더 특별해질 것입니다.